지난 4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국내 중소기업 200여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 애로 실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기협중앙회가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올해는 특히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바로 삼성을 필두로 주요 대기업들이 지난 2004년 새해 벽두부터 대·중소기업 상생에 적극 나서겠다고 잇따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암울’ 그 자체였다. 물론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주변 여건이 악화하긴 했지만 결과가 결코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결과는 이렇다. 우선 ‘불공정한 하도급거래 행위 경험 여부’에 대해 대·중소 상생이 이슈가 되기 이전인 2003년(28.2%)에 비해 지난해는 31.2%로 더 높게 나타났다. 이 수치만을 보면 불공정 하도급거래는 오히려 심화한 것이다. 여기에 불공정한 하도급거래 행위에 대한 대처 방법은 더욱 충격적이다. 응답자의 75.7%가 ‘거래 단절이 우려돼 그냥 참았다’고 응답했다. 기협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불공정 하도급 거래가 확대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정부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결론은 하나다. 더 이상 ‘말뿐’인 대·중소기업 상생은 의미가 없다. 이제는 실천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전문가 그리고 업계에서는 ‘대기업 임원급에서의 자발적 실천’을 꼽는다. 즉 대기업 임원이 직접 나서서 중소기업을 이해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대외적으로 상생을 외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비용 절감을 위해 협력사인 중소기업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등 다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모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협력사를 위해 나름대로 배려도 하고 싶지만 내부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쉬우냐”고 반문했다. 대중소기업 협력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한 단체의 관계자도 “대기업 실무자들이 중소기업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다가도 실제로 자신의 업무 손익을 따져보고는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며 아쉬워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상부에서 자발적으로 중소기업을 챙김으로써 실무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기업도 대기업이 상생 의지를 북돋울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사실 대기업들은 영세한 중소기업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 설비·시스템·조직·인력 등 여러면에서 상생하기에는 많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경주해온 반면 중소기업들은 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중소기업들은 내일도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지만 기업의 영속 그리고 대기업과의 건강한 관계 지속을 위해서는 기업 경영 혁신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도 이를 위해 혁신형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어 의지만 뒷받침된다면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갑수 수석연구원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상생 협력을 위해서는 대등한 교섭력 확보가 필요하다”며 “교섭력 확보라는 것은 대기업과 겨룰만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소기업 상생은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서로간의 이해 그리고 이를 위한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
◆대·중소 상생 한계 극복 이렇게 ◇<정부>대·중소 상생협력 강화방안 3대 목표 10대 과제 정부는 지난 5월 대통령주재 회의를 통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은 크게 3대 목표와 이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10대 과제로 구성돼 있다. 우선 3대 목표는 △공정하고 호혜적인 파트너십 구축 △중소기업의 자립능력 확충을 통한 교섭력 보강 △지속가능한 상생협력 이행체계 구축 등이다. 공정하고 호혜적인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로는 성과와 부담의 공정하고 투명한 분담원칙 확립, 기술 협력 강화, 인력 교류 확대, 협력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확대 등을 정했다. 또 중소기업이 교섭력 보강을 통해 자립능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전문화 및 대형화 유도, 중소기업의 글로벌 시장진출 지원 그리고 부품·소재 중핵기업의 육성 등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상생협력 이행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에 따른 상생협력 이행확보, 업종별 상생협력 발전전략 수립, 대기업의 설비투자 확대 등의 과제를 통해 선정했다. ◇<재계>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10가지 제언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중소 상생협력을 위한 10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주요 방안을 보면 모기업과 협력회사가 원가절감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경우 합리적으로 이익을 분배하는 베너핏셰어링(성과공유제)을 제시했다. 또 모기업이 신제품 개발시 초기단계부터 협력사를 참여시켜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연구나 공동설계를 진행하고, 모기업이 해외로 진출시 협력회사도 함께 나가는 내용도 있다. 하도급거래의 공정화 실천을 위해서는 납품단가 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 납품단가 적정화 그리고 납품대금 결제조건을 개선하고 발주물량 안정화를 기할 것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대·중소기업간 협력체제 구축의 핵심이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과제로 대기업의 중소 협력기업에 대한 품질혁신 및 기술지도 강화를 제시했다. 이밖에 △시설투자를 위한 자금지원 확대 △중소부품회사에 대한 문호개방 △적극적인 사업이양 수행 △협력회사 지원팀 강화 및 지원방침 제정 △윤리·투명경영 실천 등도 10가지 제안에 포함됐다.
◆<인터뷰>윤종용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대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윤종용 대중소기업 협력재단 이사장(61)은 일각에서 대기업들이 여전히 중소기업과의 협력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중소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업역량을 강화해서 경쟁력 및 교섭력을 제고한 후 대기업 및 인류기업과의 협력 또는 거래관계를 진행해야 한다”며 “그러한 중소기업이 많을수록 대기업은 더 많은 중소기업과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특히 “대기업은 모든 중소기업에 대한 시혜성의 지원보다는 가능성 있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며 “중소기업들을 궁극적으로는 중핵기업화 시키는 것이 대중소 협력의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소개했다. 그는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에 있어서의 인식차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우선적으로 생산 및 기술혁신을 위한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마케팅과 자금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기업으로서는 물적·인적 비용 부담과 함께 중소기업의 협력방향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해 애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대·중소기업 협력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한 배를 타고 한 곳을 향해 하는 공동체’라고 표현하는 그는 “부품·소재산업으로 대표되는 우리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바로 대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세계무대에서 국내 일부 대기업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하였지만 이는 한배를 타고 있는 협력회사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협력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한국의 대기업들이 모두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수레바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협력사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며 “실제로 원가·품질·생산성의 70∼80%는 중소 협력업체의 경쟁력·품질·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윤 이사장은 정부의 조건 없는 중소기업 지원은 오히려 대중소기업 상생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펼치기도 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붙들고 있다가는 모두가 상생할 수 없다는 점을 정부가 알아줬으면 합니다. 협력의 당사자가 기업임을 감안할 때, 정부는 기업간 당사자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바랍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기업은 우수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중소기업과의 만남에는 항상 적극적이고 환영한다”며 “미래의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신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노력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따로일 수 없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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