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후생과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 규제는 지속돼야 한다.”(정부 역할론 지지자) “원칙만 정하면 된다. 규제권을 남용한 시장개입은 있을 수 없다.”(규제 최소론 지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사업자들에 내린 사상 최대의 과징금 판정에 정보통신부의 행정지도가 상당수 원인을 제공했음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통신시장의 육성과 발전을 이끌어왔던 경쟁활성화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 정책이 독점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감시에 그치지 않고, 후발사업자 보호를 통한 경쟁활성화와 산업 육성, 나아가 소비자 후생 증대까지 이어지면서 행정력의 권한이 어디까지 미쳐야하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27일 “행정지도 했다. 그러나 담합은 시키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도 경쟁활성화 정책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규제와 육성을 넘나들면서 시장개입은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정통부-공정위 “법에 근거한 규제다”=정통부와 공정위는 이번 과징금 부과가 “각자의 역할에 법적 근거를 갖고 수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공정위는 부당 공동행위와 시장지배적 위치 남용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에 근거해 담합을 처벌하고, 정통부는 이용약관 인가사업자의 약탈적 행위를 막는 전기통신사업법상 규제권을 활용해 시장경쟁 활성화를 위해 행정지도했다는 설명이다. 김동수 정보통신진흥국장은 “클린마케팅을 유도할 때도 두 법의 근거를 모두 고려해 법률적 자문까지 받고 수행한다”면서 “정부 당국자가 범법을 유도할 리 만무하다”고 반박했다. 김국장은 다만 “당시 행정지도가 담합에 간접적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져 공정위와 함께 과징금률을 인하해준 것 아니냐”면서 “이 부분은 공정위와 입장이 갖기 때문에 두 규제기관의 이중 잣대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업자들 “잣대도 다른 과도한 규제”=반면 사업자들은 ‘이중 잣대에 의한 과잉 규제’라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KT는 “시장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후발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의 부도를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정부의 ‘행정지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하나로를 살리기 위해 가격이나 시장점유율에 대해 임의적인 조정을 하라는 말로 밖에 해석하지 않았다는 것. 보편적 서비스사업자로서 수익성도 악화되는 상황에서 후발사업자의 생존권까지 책임져야하는 통신시장만의 ‘특수한 규제’가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담합의 혐의를 인정한 하나로텔레콤 역시 “행정지도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 결국 서비스사업자의 보호와 시장경쟁 활성화를 통해 후방산업을 육성하고 그 혜택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통신시장 경쟁활성화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것. 정부의 통신시장 개입은 이용약관 인가사업자인 KT(시내전화)와 SK텔레콤(이동전화)의 요금제 확정과 지배력 확산 방지에서부터 신고사업자인 KTF, LG텔레콤, 하나로, 데이콤의 비대칭규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이번 사안이 출발했다는 통신사업자들의 주장을 100%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절반은 인정한 셈이다. ◇“최소 규제…최대 효용을”=전문가들은 산업 육성권과 규제권을 함께 쥔 정부와 사업자가 평소 ‘암묵적 합의’로 정책을 집행하는 구조적 모순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보고 있다. 민영화됐긴 했지만 KT는 여전히 정부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발적 담합을 유도했다는 것. 이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면서 보편적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방안의 사전 규제만 남겨두고 반독점방지법 등을 보강해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선진적 형태라는 지적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폐쇄구조로 돼 있는 현재 통신시장과 정책 수립의 메카니즘을 개방하는 것이 선진 시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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