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산업단지에서 공장 매매업을 6년째 해오고 있지만 올해처럼 활기를 잃은 적은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연초 2∼3개의 공장매물이 나오다가 3∼4월부터 두 배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실거래는 뚝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심지어 견실한 재무구조를 가진 중소업체 사장들도 불안한 심리 탓에 설비투자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체 T컨설팅의 L사장은 시화공단을 비롯, 경기도 소재 산업단지의 싸늘한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수출산업의 심장부인 산업단지들이 올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수출은 물론 내수시장 위축에 따라 남동공단에 입주한 상당수의 전기전자업체들은 심각한 매출 타격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머지 않아 부도를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동차용 커넥터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남동공단의 H업체 L전무는 올들어 밤잠을 설치곤 한다. 주매출원인 자동차산업이 조만간 불황의 급류에 휘말릴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 그는 “현재 거래처의 완성차 재고가 10만대에 이르고 있어 6∼8월에 매출이 크게 격감할 것”이라고 불안감을 표시했다. 이 회사는 게다가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불황이 1∼2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신제품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제품의 성능향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불투명한 미래 영업환경 탓에 기업의 핵심역량을 키우는 데 손을 빼고 있는 것이다. 안산 반월공단에 위치한 일진. 케이블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최근 경기침체와 신규사업인 광케이블 부문의 매출부진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순이익은 10% 가량 떨어진 데다 공장가동률은 지난해 60% 수준을 밑돌고 생산인력은 경기가 그나마 나은 건설업종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이 회사 허덕 공장장은 “과거에도 경기변화에 따라 기업의 부침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심각한 불황은 없었다”며 “10년 이상 반월공단에 몸담고 있지만 이렇게 모든 업종의 업체들에서 썰렁한 분위기를 느끼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남동공단에서 AC기어드 모터를 생산하는 S업체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가동률 하락으로 당초 계획 대비 20%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극심한 경기불황이 지속되면 하반기엔 경영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할 판이다. 한국산업관리공단 경인지부 안보광씨는“남동공단 업체들의 공장가동률이 80%대에 달하지만 실제 입주사들이 느끼는 체감 공장가동률은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몇몇 업체 사장은 ‘공장가동률이 50% 이하로 급락, 문을 닫아야겠다’는 푸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놀고 있는 설비를 내놓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유휴설비정보 사이트엔 지난 5월 말까지 총 1893건의 생산설비가 매물로 나왔다. 부도 업체수도 증가했다. 중소기업청이 파악한 지난 4월 부도 법인수는 총 240개로 작년 동기(146개사)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T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공단 입주업체 사장들 사이에선 ‘제조업에 매달릴 필요가 있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실제 제조업을 포기하고 임대업으로 전환하거나 공단을 떠나 땅값이 상대적으로 싼 발안·화성 등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박지환기자 daeba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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