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기술종목 투자자들은 폭등장세 속에서 한껏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나스닥 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5048.61로 한 주를 마감했고 경제는 활기가 넘쳤으며 Y2K 문제도 무사히 넘겼다.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은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때다. 하지만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기술주가는 그동안 폭락을 거듭, 낙관적이었던 투자 분위기를 ‘불확실’과 ‘우려’로 대체하면서 최고치 기록 3주년을 맞았다. 나스닥은 이날 1278.37로 3년 전에 비해 70% 이상 주저앉았으며 시가총액은 4조달러 이상 줄었다. 웹머저스닷컴(Webmergers.com)에 따르면 기술투자 호황을 이끌었던 인터넷 부문에서 962개 회사가 파산신청 후 문을 닫았고 3892개 회사가 매각됐다. 이 와중에 해고된 사람들만 수십만명에 달했다. 베이지역(샌프란시스코 주변 실리콘밸리) 소재 유명 기업들 대다수는 폭락장세의 물결에 휩쓸렸다. 지난 3년 동안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 주가는 77%, 시스코시스템스(Cisco Systems)는 81%, 선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는 무려 93%나 곤두박질쳤다. 이같은 폭락세는 이라크전 전운 고조 및 국가 경제 활기 상실과 겹치면서 투자심리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웰스캐피털매니지먼트(Wells Capital Management)의 제임스 폴슨(James Paulsen) 최고투자전략가는 “투자자들이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시장밖으로 나왔다”며 “만약 지금도 투자한다면 우둔하거나 황소고집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주가하락의 고통은 기술종목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0일 다우존스(Dow Jones) 산업평균 지수는 2.06% 떨어진 나스닥과 함께 171.85포인트, 2.22% 동반하락한 7568.18로 장을 마쳤다. 이는 2000년 1월 14일 다우존스 사상 최고치였던 1만1723에 비해 35% 줄어든 수치다. S&P500(Standard & Poor’s 500) 지수도 2000년 3월 24일 최고치인 1527.46에 달한 뒤 하락해 이날 전일비 21.41포인트(2.58%) 줄어든 807.48로 마감됐다. 이들 지수는 이미 기술종목 사상 최악의 폭락시기였던 지난해 10월 바닥으로 추락했다. 당시 나스닥은 1114.11 다우존스는 7286.27까지 떨어졌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처럼 침체된 주식시장이 최소한 이라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대학(University of San Francisco)의 마이크 리먼(Mike Lehmann) 경제학 교수는 “경제뿐 아니라 전쟁 임박설 등 불확실성이 이토록 높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며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조기 승리로 종결되면 시장회복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그것만으로 경제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시장이 회복되려면 승전뿐 아니라 지난 90년대의 컴퓨터 구매러시와 같은 기업들의 지출증가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떤 기술 분야에서도 그럴 기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지난 91년 걸프전 때처럼 이라크 전쟁에서도 속전속결이 필요하다”며 “이후 PC혁명과 같은 투자 붐이 일어야 하지만 아직은 둘다 불확실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반면 낙관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도 제시되고 있다. 하이테크 중심지 베이지역의 경우 경제성장을 거의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미국 경제는 성장을 지속해 왔으며 기술주가도 지난 3년 동안 하락한 이후 최근 살아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뉴욕 소재 S&P의 샘 스토벌(Sam Stovall) 선임투자전략가는 S&P500 편입 기술주가가 다른 경제 부문 주가보다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S&P500 기술주가는 이달 들어 하락했지만 그래도 다른 부문보다 상태가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스토벌은 “기술 분야보다 더 나쁜 분야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다수 기술기업의 주가가 여전히 폭락한 상태지만 시스코·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플렉스트로닉스(Flextronics) 등 S&P로부터 ‘매수’ 등급을 받은 투자할 만한 기업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웰스캐피털의 폴슨 최고투자전략가는 투자자들이 올들어 기술주 성과를 아예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스닥 최고치 기록 이후 3년 동안 투자심리가 냉각됐다는 반증으로 해석했다. 3년 전 기술주가 일시 하락은 매수호기로 인식될 정도로 주가상승 기대심리는 살아 있었다. 그는 하지만 올들어 투자자들은 기술산업 성과가 비교적 강세를 보이고 있더라도 경기침체로 인해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투자자들이 기술기업 성과호전을 ‘전에도 거품이 꺼진 적이 있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3년 전과 비교해 가장 커다란 변화는 얼어붙은 투자심리”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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