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소지행태가 변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 차장은 지갑속에 한장의 카드만 꽂혀 있다. 불과 5년전만 해도 5장이 넘는 신용카드를 지니고 다녔다. 현금카드 용도로만 쓰는 급여이체 은행 카드와 후불 교통카드로만 활용하는 신용카드, 주유할인 혜택이 큰 모 카드, 할인점·음식점의 마일리지가 강조된 카드 등. 저마다 나름대로의 쓰임새가 있었지만 번거로움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IC의 방대한 저장용량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만 골라 수시로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됐다. #달라진 가맹점 풍속도 경기도 인근의 가전대리점 주인 김모씨는 몇년전 A카드사로부터 곤욕을 치렀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게에서 도난카드로 수백만원어치의 물건을 구입한 사건이 벌어져 피해액의 일부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걱정을 크게 덜었다.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면 카드조회(VAN)단말기에 부착된 핀패드에 자신의 비밀번호를 직접 입력해야만 한다. 마그네틱 신용카드가 IC카드로 바뀐 덕분이다. #휴대폰과 신용카드의 경계가 사라졌다 신세대 직장인 이 대리는 휴대폰으로 버스도 타고, 자동화기기(CD·ATM)에서 돈도 찾는다. 음식점에서 한턱 낼 때 신용카드를 써야 하는 경우에도 휴대폰으로 결제한다. 신용카드는 지갑 한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지만 꺼내 써 본 지가 오래다. 휴대폰 속에 손톱만한 크기의 착탈식 칩카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모바일 중독증’ 세대임을 자처하는 이 대리는 플라스틱카드가 오히려 불편하다. #신용카드회사들에겐 효자노릇을 신용카드사들은 이제 카드위조 범죄를 우려하지 않는다. 2002 한일월드컵을 전후해 동남아 지역의 해외 사기단이 넘나든 뒤 갑자기 늘어난 위변조 사건탓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하지만 IC카드를 발급한 뒤부터는 이런 걱정이 상당부분 해소됐다. 마그네틱카드와는 달리 사실상 복제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IC카드를 도입한 후 마케팅 비용은 줄어든 대신 회원 서비스는 한결 나아졌다. 대용량 메모리를 적극 활용해 고객별, 가맹점별로 차별화된 부가서비스를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게 됐고, 회원과 가맹점의 충성도도 향상됐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IC카드가 만들어 낼 각 경제 주체들의 달라진 생활상들이다. 전통적인 자기띠(마그네틱)카드의 한계에선 생각할 수 없었던 IC카드의 장점들이 그대로 구현된다면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무엇보다 대다수 국민들과 카드 소지자들에게 생소한 탓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IC카드를 접해보지 못했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로는 아직까지 IC카드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어느샌가 IC카드가 생활 곳곳을 파고 들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지금은 발급량 2000만장으로 완전히 대중화 단계에 들어선 교통카드가 실은 비접촉식(RF) IC카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0대 청소년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자신도 모르는 새 IC카드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셈이다. 요즘 웬 만한 중견기업이상이라면 유행처럼 도입하고 있는 출입통제시스템도 대부분 RF IC카드다. 정부는 현행 공무원증을 IC카드로 일부 시범 적용하는 사업에 나서고 있다.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가입자들도 TV 셋톱박스에 IC카드를 꽂아야 시청할 수 있다. 올 한해 서로 영토침범이라며 통신·금융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모바일 지불결제서비스는 칩카드를 휴대폰 안에 내장한 것에 불과하다. 현대자동차는 내년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자동차에 IC카드를 결합한 이색적인 서비스를 준비중이다. 국민은행은 IC카드로 현재의 종이 통장을 대체하는 이른바 ‘전자통장’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아직 피부에 와닿지는 않지만 IC카드가 벌써부터 다채로운 용도로 시도되고 있는 사례들이다. 한국이 IT강국으로 올라선 비결을 국민들의 ‘역동성’에서 찾는 외국인들은 특히 IC카드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한다. 냄비근성이라며 스스로 폄하하곤 하지만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무섭게 받아들이는 흡인력이야말로 우리의 잠재력이라는 뜻이다. 일반 가맹점에서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면서 폭발적인 사용증가를 가져온 시기가 불과 5년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과 비교하면, IC카드의 생활화 또한 순식간에 다가올 상황일지 모른다. 지금은 다양한 시도속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씨앗을 뿌리는 시기인 셈이다. 내년부터는 산업계 곳곳에서 IC카드 환경을 태동시키려는 움직임이 더욱 숨가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IC카드 도입을 서두르는 곳은 비자·마스타 등 글로벌 신용카드 브랜드들이다. 다소 늦춰지곤 있지만 향후 5년내 신규 발급카드는 IC카드로 전면 전환한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마그네틱 카드로는 신용카드 위변조 범죄를 막기에 역부족인 데다 날로 급증하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한장의 카드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자·마스타 등 주요 브랜드들은 IC카드 보급을 서두르기 위해 저가형 카드·단말기 개발을 지원하는 한편, 회원사들에도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현재로선 가장 큰 투자처인 SK텔레콤 등 통신사업자들의 행보도 커다란 자극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SK텔레콤은 내년까지 500억원을 투입해, 휴대폰 결제가 가능한 단말기 인프라를 40만개 가맹점에 확대할 계획이다. 최대 기간통신사업자인 KT도 내년까지 500만장의 IC카드를 발급하고, 20만개 가맹점에 단말기를 구축키로 했다. 그동안 숨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던 전자화폐·교통카드 전문업체들도 현금을 대체할 소액 결제시장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유통 가맹점에 IC카드 단말기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탓에 폭발적인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온라인 소액결제 서비스를 늘리거나 교통카드와의 접목 등을 통해 실사용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IC카드 시장의 저변에는 자생적으로 기술 역량을 축적해 온 상당수 솔루션 전문업체들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비자·마스타 등이 글로벌 프로젝트의 협력사로 국내 기업들을 대거 선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쟁력을 갖춘 솔루션 전문업체들은 내수 시장에서 국산화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기술력을 무기로 해외 진출도 적극 타진한다는 태세다. 다만 현재로선 신용카드 업계의 투자위축 분위기가 커다란 짐이다. 올해 각종 규제와 영업환경 악화에 시달린 신용카드 업계는 내년도 신규 투자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 반드시 가야할 방향이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상당수 카드사들은 IC카드 분야의 투자도 인색할 것으로 보인다. 발급기관으로서 IC카드 시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는 카드사들이 움츠러드는 분위기는 부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일부 카드사들은 예산의 전반적인 축소에도 불구하고 IC카드 분야에서 전략적인 사업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발 카드사는 매체가 변화되는 상황에서도 기존 시장 지위를 이어가려 하는 의도고, 후발 카드사는 신기술을 활용해 점유율 확대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내년도 IC카드 시장은 카드업계의 보수적인 자세속에서 비금융권 서비스 사업자들이 다각적인 활용사례를 발굴하면서 서서히 대중화를 시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종 비자코리아 사장은 “사용자들의 신속한 환경 적응력과 업계의 기술경쟁력, 사업자들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합쳐져 IC카드 대중화 원년이 될 것”이라며 “금융권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IC카드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전략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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