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초 삼성전자가 온라인 유통업체들에 지펠, 파브 등 대표적 고급가전 공급을 중단한다고 통보해 국내온라인업체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발단은 온라인쇼핑몰에 제품을 공급하는 삼성의 자회사가 롯데닷컴, 인터파크, 한솔CSN, LG이숍 등에 제품을 줄 수 없다고 e메일로 공문을 보내면서부터. 이유는 온라인상에서 삼성 고급가전을 초저가로 팔아 삼성브랜드 이미지를 흐린다는 것이었다. 온라인업체들은 삼성 제품에 대한 결제기일 지연, 각종 행사시 삼성제품 제외, 대체 거래선 발굴 등 실력행사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이튿날, 삼성전자는 돌연 “자회사가 삼성본사와 협의과정에 있는 사항을 실수로 통보해 빚어진 사태”라고 공식발표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가전업체가 신유통업계, 특히 온라인유통업체에조차 더 이상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메이커의 모습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에 다름 아니다. 물론 3∼4년전부터 대형할인매장과 양판점 등 오프라인 신유통업계가 대량구매력을 앞세워 싸게사서 싸게 공급하며 가전업체 대리점을 위협해 온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이들은 제조업체에 자사 유통점의 브랜드를 붙인 이른바 PB(Private Brand)제품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제조업체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최근의 가전유통시장 상황은 삼성전자, LG전자로 대변되는 대형 가전메이커들에조차 가전유통시장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올해 총 7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가전유통시장의 상반기 매출규모는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상반기중 양판점·할인점·TV홈쇼핑의 소매공급 가전 매출총액은 4억원 규모의 가전유통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실제로 하이마트·전자랜드 등 양판점 9700억원, 이마트 등 5개 대형할인점과 중소할인점 7500억원, TV홈쇼핑과 인터넷 홈쇼핑이 3800억원 규모를 각각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변화를 감지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8월부터 자사대리점 조직화와 정비에 나섰다. “월등한 조건의 금융지원을 통해 기존 대리점의 대형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삼성과 LG측의 전략은 신유통 공세에 맞대응하기 위한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LG전자는 파격적 재무지원을 통한 대형화 외에도 대리점 이외의 유통점별로 차별화한 모델과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으로 대리점 자생력 키우기에 나섰다. 아남전자·이트로닉스같은 중견업체들도 홈시어터전문점 육성, 유통전담 매니저 등을 도입하는 등 자구에 들어갔다. 유통주도권 경쟁 구도속에 삼성·LG전자가 암웨이, 앨트웰 등 이른바 네트워크마케팅업체와의 판매협력 시도도 나타났다. 김치냉장고, 밥솥 등 몇몇 제품에 불과하지만 대리점에만 의존하던 제조업체가 본사차원에서 또 다른 유통라인과 손을 잡은 것 자체가 종래에는 꿈도 못꿀 혁명적 변화다. 바야흐로 대리점을 내세워 가전유통을 주도했던 제조업체가 신유통의 등장에 따른 변화와 현실을 수용하면서 가전유통시장의 대변혁이란 큰 그림을 함께 그려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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