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코너는 전자우편 메시지 마지막에 ‘힘내, 그리고 용기를 가져’라는 말을 잊지 않고 적는다. 그녀는 전자우편 끝에 용기를 가지라는 말을 15개월 전 닷컴회사에서 해고됐을 때부터 늘 적어 왔다. 그녀는 무려 473통의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낸 끝에 마침내 직장을 얻었다. 희망찬 미래의 출발점으로 기대됐던 실리콘밸리는 이제 3년연속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미래에 대한 수심이 가득한 지역으로 바뀌었다. 실리콘밸리 중심지역인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경우 100만여명이 매일 출근하고 있지만 직업이 있는 이건 실업자건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모두 고통받고 있다. 다우존스 폭락과 해고 행렬은 그칠 줄을 모르고 실리콘밸리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 실리콘밸리 15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2000년 이후 지금까지 1조달러 이상 줄어들었으며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경우 2년 만에 9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예산 적자는 올 여름을 지나면서 소득세 수입 감소로 더욱 불어나 240억달러라는 최고기록을 세웠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민 1인당 750달러의 적자를 안고 있다는 의미다. 실리콘밸리 문제의 심각성은 경기가 좋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된다는 데 있다. 실리콘밸리의 ‘치어리더’로 통하는 시스코시스템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존 체임버스는 지난주 기업의 기술 지출에 대한 태도가 요즘처럼 조심스런 때는 없었던 것 같다고 걱정했다. 2000년 한때 세계 최고의 시가를 자랑했던 시스코의 주가는 지난 8주 동안 무려 30%나 폭락했다. 새너제이주립대학 정책연구소(PRI)가 최근 공동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주민 10명 중 4명이 금융시장 불안과 실업률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리콘밸리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지난해 8년 만에 처음로 감소했다. 경기침체는 개인의 생활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보육 탁아소 운영자가 남편의 실직으로 이사를 갔으며 퇴직한 중역들은 주중 사이클여행 대열에 참가해 실직자들의 애환을 나누고 있다. 하이테크 분야에서 구인구직자를 연결해주는 헤드헌터인 몰리 클록은 “이제 실리콘밸리 주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가족과 친구, 자신에 대한 믿음과 건강으로 압축된다”고 꼽았다. 지난 90년대의 하이테크직은 단순한 직장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스톡옵션과 사내 안마가 제공되는 화려한 신분의 변화를 의미했다. 실리콘밸리는 폭발적인 성장과 부의 상징이 되어 세계 도처에서 많은 기술자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같은 집단적 환각상태가 사라진 지 오래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까지의 15개월 동안 5만명 이상이 샌타클래라 카운티를 떠났다. 이는 면적 순서로 미국에서 가장 큰 상위 15개 카운티 가운데 가장 높은 전출률이다. 실리콘밸리인들은 실직상태가 몇 개월에서 1년으로 넘어가면서 몇 개월 전만해도 생각조차 안했던 일들을 스스럼없이 선택하고 있다. 빌 잉그램(42)은 지난해 8월 광대역 인터넷 회사인 카퍼마운틴네트웍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해고됐다. 팰러앨토에 사는 그는 수학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교사자격 취득과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재 그는 정부 보조금과 처가의 경제적 지원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주민들은 15분이면 하이테크 트렌드가 바뀔 정도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있다. 벨몬트에 사는 메리페이스 해킷(45)은 실리콘밸리에서 7년 동안 살았으나 이제는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녀는 시카고대 MBA와 화학 박사학위로 단단히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2월 직장을 잃은 뒤 임시직으로 그것도 한 곳에서만 일했을 뿐이다. 그녀는 “인력시장에 희망의 빛이 희미하게 깜박거리다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경기 하강세는 하이테크 부문만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투안 부이(35)는 지난 99년 이후 두차례 해고됐다. 그는 이제 전기기술직 찾기를 포기하고 굿윌인더스트리스가 실시하는 회계 강의를 들을 예정이다. 그는 “회계사란 경기가 좋건 나쁘건 어느 기업에나 필요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굿윌은 최근 짐 코멘데이터(56)를 자사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뽑았는데 코멘데이터도 프리몬의 파산한 한 통신회사 출신이다. 레슬리 이글레시아스(25)는 이민자를 도와주는 한 비영리기관에서 해고된 뒤 7개월 동안 직장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최근 들어 주유소 계산원으로 1시간에 8달러를 받고 일하고 있다. 이 정도 임금이면 2년 전 엘살바도르를 떠나 마운틴뷰에 온 그녀가 좀더 안정된 직장을 얻을 자격을 갖추는 데 필요한 영어수업을 받을 수 있다. 짐 번스(56)는 실직한 이후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으나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연매출이 1억 달러에 달했던 칩장비 제조업체 ATMI세미컨덕터의 전 CEO였던 그는 “중역급의 일자리를 찾기가 이렇게 어렵기는 생전 처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샐러리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세청(IRS)에서 9년째 재직하고 있는 레이 시아벨레스키 2세(41)는 해고 걱정은 없지만 장애인이기 때문에 새너제이 보건서비스업계의 경기위축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새너제이메디컬그룹이 최근 파산을 신청하는 바람에 다음달부터 새로운 보건서비스로 전환할 예정이지만 새 서비스는 비용이 많이 들어 걱정이다. 새너제이의 홍보대행사 올로프/윌리엄스는 이번주에 주최할 자사 창사 10주년 행사에 할인 보드카인 포포브를 섞은 마티니를 제공할 예정이다. 불과 몇 년전 비싼 케텔 원을 마음껏 따라 마셨던 닷컴 호황기의 파티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제이 안 기자 jayahn@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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