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는 이미 세계 IT산업의 공장이다. 세계인이 쓰는 컬러TV·DVD·부품 등 전자제품의 4분의 1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지난 2000년 세계 전자산업 생산규모는 1조1888억달러였고 이 가운데 한·중·일 3국의 비중은 27.6%에 달한다. 일본은 17.1%로 미국에 이어 2위이며 중국 6%로 3위, 한국은 4.5%로 5위다. 시장도 커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시장이 될 것으로 예정됐다. 세계 전자시장 규모 1조1619억달러(2000년) 중 한·중·일 3국의 비중은 20.3%에 달했다. 일본이 12.8%로 2위, 중국이 5.3%로 4위, 한국이 2.2%로 9위다. 10위권 중 아시아 국가는 세나라 뿐이다. 생산과 소비 모두를 장악하는 셈이다. 미국으로부터 IT패권을 이양받을 만한 자격과 힘이 충분하다. 미국의 IT경기가 극도로 침체됐음에도 불구, 동북아 IT경기는 계속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선진국에 IT관련 각종 원천기술을 의존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으나 동북아의 IT권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중·일의 IT권력은 보잘것없었다. 일본은 10년 불황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고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었다. 중국은 IT국가라고 지칭하기를 꺼려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중국은 WTO 가입을 역으로 이용해 세계시장 진출의 발판을 삼고 있다. 일본 역시 한국과 중국에 자극을 받아 구조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세나라는 상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3국은 대만·홍콩 등을 해저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아시아 정보 네트워크 구축을 주도하고 있으며 통신을 중심으로 3국 협력도 강화했다. 나아가 차세대 정보통신 분야의 협력을 통해 차세대 IT리더십을 장악하려 한다. 아직 선진국들도 발을 담그지 않은 분야를 선점해 기술과 시장 종속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우선 한·중·일은 4세대 이동통신, 디지털가입자회선(xDSL), 무선인터넷 플랫폼, 차세대인터넷(IPv6)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표준화 협력에 합의했다. 3국의 민관협력을 통해 만든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ITU·ISO/IEC 등 국제 표준화기구와 ASTAP 등 국제 표준화 포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널리 알리는 한편, 관련 회의를 3국에 유치해 3국내에서도 표준화 포럼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3국이 개별적으로 선진국의 표준화 논의에 가세한 적은 있으나 3국이 주도적으로 표준화를 이끄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또 이동통신·반도체 등 유망 IT산업의 생산기지화와 국제 연구개발(R&D)센터 유치 등 3국의 아시아 IT거점화 전략은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동북아의 IT 위상을 높여주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IT분야에서 3국의 강점은 IT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IT산업은 전통적인 전자산업과는 달리 수요가 많은 곳에서 기술이 발전한다. 한국이 이동전화 콘텐츠 강국이 된 것도 3000만을 돌파한 이동전화 보급이 뒷받침됐다. 한국의 이동전화 콘텐츠업체들은 이제 세계 각국으로 솔루션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또 3국은 IT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특화돼 있다. 한국은 전자정부·이동통신·인터넷·시스템통합(SI) 등과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핵심 범용부품에서 강점을 갖고 있으며 중국은 조립산업과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가졌다. 따로 떼어놓았을 때보다 합쳐놓을 경우 3국의 힘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브랜드 지명도도 높아졌다. 중국은 WTO 개방과 올림픽 유치를 통해 ‘죽의 장막’을 완전히 열어젖혔으며 미국과 겨룰 강대국의 이미지를 심어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을 단순한 조립생산기지로만 알고 있던 선진국들도 이젠 IT인프라가 가장 발달한 나라임을 알게 됐다. 외신은 서구인들이 월드컵 개막식 때 동영상으로 전화하는 시연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문화적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경험으로 ‘모래알’같기만 했던 동북아 국가들은 이제 IT를 촉매제로 끈끈히 뭉치고 있다. 물론 서로 이익만 취하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3국 협력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여야 하나 지난 2세기 동안 서구에 내줬던 세계의 중심 자리를 되찾는다는 야심속에 묻히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국제 스포츠 행사 기반 국력 `업그레이드`■ 1964년은 일본에게 특별한 해였다. 아시아에서 처음 올림픽을 개최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소니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하면서 일본은 전자산업계에 명함을 들이밀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변방의 작은 국가였다. 그러나 일본은 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더구나 도쿄 올림픽은 통신위성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된 최초의 올림픽이었다. 아직까지 일본을 상징하는 대명사 중 하나인 신칸센 운행과 일본 최초의 컴퓨터 개발이 같은 해 이루어졌다. 일본의 도쿄올림픽 개최가 전후 재도약의 발판이 됐음은 이후의 승승장구가 증명한다. 일본은 TV 등 세계 전자산업의 황제로 등극,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아시아 두번째 올림픽은 88년 서울에서 열렸다. 88년 서울 올림픽은 불안한 정치상황과 남북분단으로만 알려진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세계 무대에 데뷔시킨 행사로 평가받았다.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옮긴 당시 정권의 술책’ ‘경제발전의 성과로 연결짓는 데 일부 실패’ 등의 비판을 받았으나 세계의 시선을 모은 올림픽 개최를 통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는 평이다. 두 나라는 올해 힘을 모아 또 한번의 ‘아시아 최초’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에선 처음 월드컵을 개최했다. 특히 ‘안전’을 키워드로 내세운 일본과 달리 한국은 90년대 말 이후 핵심 성장엔진으로 교체한 IT산업을 내세워 ‘역동적인 IT코리아’로 주목을 받았다. 세번째 타자는 중국이다.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베이징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개방’이라는 말이 이제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WTO가입으로 세계 경제시장의 완전한 편입도 앞두고 있다. 2008년이면 어떤 위치에 있을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세계 경제·정치·문화의 헤게모니에서 한·중·일 3국은 ‘뜨거운 감자’였던 적은 있어도 ‘중심’에 선 적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중·일 3국에게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는 세계의 중심에 다가가는 계단이었고 동시에 ‘국운 업그레이드’를 위한 발판이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동아시아 저력은 뭔가 ■ 동아시아 국가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거침없이 성장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뒷심은 늘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의 관심거리다. 동아시아 경제 성장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정부 주도의 경제 성장 모델이 성공을 거뒀다. 높은 교육열, 공동의 목표를 우선하는 미덕, 유교적 전통의 근검절약, 저축을 통한 투자 등도 공통적이다. 이는 그간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름 아래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유산으로 치부됐다. 90년대말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자 이러한 분석이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이른 시일안에 극복하자 동아시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딛고 IT산업을 통해 경제 회복을 이룬 것은 대표적인 예다. 정부, 대기업이 중심이 된 일사불란한 IT산업 육성책 및 정보화 정책은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 역시 국가가 주도한 경제 성장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외국인들은 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에 나선 한국인들이 맨손으로 오물을 치우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선 ‘집단주의의 발로’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외국에선 되레 긍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같은 문화와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IMF시절 한국에서 벌어진 금모으기 행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많았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도 공동체 의식에선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선 높은 편이다. 글로벌 시대에 동아시아인들의 의식도 변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의 의식은 서구화했다. 최근 국내 네티즌 사이에 논란을 빚은 ‘자살사이트’나 ‘누드파티’가 단적인 사례다. 중국의 경우 개방 이후 개인화가 극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성세대에 비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적 가치’와 ‘글로벌 가치’의 조화가 이뤄지느냐 여부에 따라서 동아시아의 저력은 더욱 힘을 배가할 수도, 무력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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