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망각의 자연]
['서러움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자유인' 박재삼시인]
[‘한(恨)’과 관련된 보충 내용들]
● '이별(離別).사별(死別)의 아픔 ( + 그리움 )'을 노래한 작품
● 눈물의 한국학
[박재삼 추모 1주기 기념]
['서러움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자유인' 박재삼시인]
― 한(恨)(註)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 ―
미당 서정주는 박재삼 시인을 이렇게 불렀다. [20세기 한국의 마지막 서정시인]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찬사가 아닐 서정의 시인이었던 그가 근 30년의 투병생활 끝에 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화안한 꽃밭 같네, 참/........./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 ꡔ봄바다에서ꡕ 중에서
그 화안한 꽃밭 같은 고향 삼천포 바다 너머의 세계로, 흰나비처럼 시인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그는 [슬픔]의 시인이었다. 감상기 섞인 [한]이 아닌, 진정한 [서러움]의 시인이었다. 그의 서러움은 이 절창을 낳았다. 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박시인은 4살부터 스무살 무렵까지 삼천포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광주리 이고 멍게 장사를 하고 아버지는 지게 지고 노동했다. 그는 유년 시절을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바닷가에서 자라/ 꽃게를 잡아 함부로 다리를 분질렀던 것/../햇빛에 반짝이던 물꽃무늬 물살을 마구 헤엄쳤던 것’(ꡔ신록을 보며ꡕ 중에서)으로 회상하기도 했다.
고려대 국문과 중퇴 후 신문 등에 바둑관전평을 쓰는 일 말고는 평생을 다른 직업 갖는 일없이 살았던 이 자유인에게 대신 가혹한 가난과 병마가 덮쳤다. 35세에 처음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그는 임종시까지 만성 신부전증과 심근경색, 창(창)으로 투병해왔다. 문단에서는 [박재삼 시인 돕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남은 시로 이제 우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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