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댐 건설 기술의 발전사
ƒ. 삼국시대∼고려
우리나라는 아시아 몬순지역 특유의 다우지대이므로 일찍부터 물을 이용하는 쌀농사가 시작되었고, 이와 더불어 관개용 수리 시설이 발달하게 되었다. 기록상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댐은 서기 330년(흘해왕 21년)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이다. 벽골제는 토사를 다져 만든 흙댐으로 길이 3,240m, 높이 4.3m, 댐 마루너비 7.5m, 댐 밑바닥너비 17.5m, 사용토량의 부피 161,253m3로서 고대의 토목공사로서는 상상 이상의 대규모 공사였다.
보통 댐이라고 하면 높이가 15m 이상이어야 한다. 벽골제는 15m 이상이 아니므로 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댐 기술 발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평탄한 지형에 3,240m에 걸쳐 높이 4.3m의 제언(堤堰)을 축조하면서 적용한 정밀도 높은 수준측량(水準測量) 기법을 높이 평가할 만 하기 때문이다. 벽골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가 축조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백제의 축조로 보는 것이 역사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로 되어있다.
신라 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알려진 저수지로서 시제(矢堤), 의림지(義林池), 대제지(大堤池), 수산제(守山堤) 및 공검지(恭儉池)등이 유명하며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벽골제보다 약 백년 뒤인 429년(눌지왕 13년)에 벽골제보다 더 규모가 큰 시제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시제가 지금의 어느 곳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삼국 시대의 제언으로서 현재까지 잔존하는 것은 김제의 벽골제, 영천의 청제(靑堤),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 등이다. 1968년 12월 신라 삼산 조사단에 의하여 영천에 있는 청제(청못)가 신라 시대에 축조된 제언임이 확인되었다. 청제는 530년(법흥왕 23년)에서 596년(진평왕 18년)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되어있다.
고려 시대에는 오랜 전란 등으로 정치가 불안정하여 댐 건설에 특기할 만한 발전은 없었으나, 995년(성종 15년)에 공조 산하에 우수부(우수부)를 설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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