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시장은 물물교환으로부터 유래된다(이하는 매일경제 1998. 3. 3). IMF는 한국에 시장경제 도입을 강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고조선이래 5,000년간 시장을 일구어냈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 시장은 유통업의 최말단에서 단순한 소매유통 기능 외에 ‘문화의 산실’ 구실을 맡아 왔다. 아래에 기술한 간단한 시장의 시대별 발전사 기술은 재래시장의 뿌리를 찾아보고 향후의 전망을 바라보고자 함이다.
본문일부/목차
1). 고대사회
상고시대 화폐가 등장한 것은 고조선시대다. 기자조선 6년 문성왕 때 곡폐(穀幣)와 피폐(皮幣)가 사용되었고, 9대 흥평왕 때부터 자모전(子母錢)이라는 주화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장에 관한 기록은 삼한시대에 들어서 나타난다. 기장, 조, 보리, 콩, 벼 등 오곡을 생산하고 누에고치와 삼을 원료로 방적이 널리 퍼지면서 시장이 여러 개 등장했다.
2). 삼국․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 상품 유통은 귀족의 사치품과 수공업제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비자급적 필수품인 쇠솥, 금속제 농구, 소금, 토기, 삼베 등과 같은 물건이 활발히 교환되었고 행상의 활동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이 시기에는 정기적으로 열리지 않았지만 지방에 향시(鄕市)가 있었고 수도에는 상설시장인 경시(京市)가 점차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3). 고려시대
고려의 유통정책은 신라보다 적극적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설치된 시전(市廛) 외에 공설주점을 설치해 주화 유통과 행상의 편의를 도모했다. 희종(서기 1205년) 때에는 개성시장에 상설로 운영하는 점포가 등장했고 이들 점포를 관리하는 관청인 경시서(京市署)가 설치되었다.
4). 조선시대
정종 때 수도 한양성 내에 개성의 시전을 본 뜬 시장이 정부의 필요에 의해 설립되었다. 중앙정부는 공랑(公廊)으로 불리는 건물을 상인들에게 임대해 이윤의 대부분을 사용료 명목으로 징수했다. 대신 상인들은 정부로부터 지정 판매인 자격을 부여받았는데 대표적인 단체가 육의전이다. 이 때는 행상과 달리 점포를 가지고 장사하는 소매상인인 좌가(座價)가 있었다. 시전 이외에 대표적인 소매기관으로는 보부상을 들 수 있다. 5일마다 열려 5일장이라 불리는 향시와 봄, 가을 또는 일년에 한 번 개시하는 약령시도 조선시대에 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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