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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고고학 논문 요악 및 비평문 - 신석기시대 생계방식의 변천과 남부 내륙지역 농경의 개시


카테고리 : 레포트 > 사회과학계열
파일이름 :신석기시대 고고학 논문 요악 및 비평.hwp
문서분량 : 3 page 등록인 : leewk2547
문서뷰어 : 한글뷰어프로그램 등록/수정일 : 15.04.24 / 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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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설명
신석기 시대상으로 출토된 많은 패총들로 인해 그 당시 한반도에서는 활발할 어로생활이 있었다는 것과 그 외 수렵 & 채집 생활을 했다는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대동강과 한강에 신석기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말을 읽으면서 알게 된 논문의 키 포인트 와 나의 생각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생업경제는 어로 중심 경제에서 식물위주 채집경제로, 그 다음으로 조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왜 국사교과서에 빗살무늬토기가 가장 많이 언급이 되는지 오산리식 문화를 밀어내고 한반도 전국적으로 빗살무늬토기가 사용 된 것과, 중기 이후 조 문화의 형성, 어로생활보다 경제적 비용이 높은 내륙지방으로의 이동 이유는 인구증가와 빗살무늬토기문화수용, 채집경제에서 식량생산경제체제로서의 체계변화, 이로 인한 생업경제의 변동과 주거생활 입지선택기준과 밀접과 저비용 고효율 효율성 등이 내 눈에 키 포인트로 보였고 수업시간에 공부했던 내용들이 시나브로 생각나게 해주었다.
본문일부/목차
먼저 신석기 시대의 생계방식의 변천과정 중 ‘어로중심의 채집경제’ 파트를 읽고 요약을 해보려고 한다. 한반도의 환경이 홍적세에서 충적세로 바뀌는 환경변화는 식단의 변화를 가져온다. 홍적세와 충적세의 정의도 붙이자면 먼저 홍적세는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이며 오늘날과 같은 기후상태와 대륙빙하가 발달하였던 시기가 교대로 나타나는 대단히 불안정한 기후로 특징되는 시기로, 빙하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충적세의 경우는 홍적세 이후의 현재까지의 지질시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날씨가 따듯해지고 해수면이 올라감에 따라 신석기인들은 내륙에서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생활주거지를 이동하게 된다. 패총과 결합식 낚시 바늘은 이를 증명해 준다. 오산리식토기문화와 결합식 낚시 바늘을 이용한 연어잡이는 함께 관련성이 있다. 오산리식 평저토기문화에서 출토되는 물고기저장혈과 작살 등 어로구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번학기에 같이 들었던 고고학연구법 내용에서도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식 평저토기문화와 빗살무늬토기문화와의 관계, 그리고 거주위치와 생계방식은 자주 언급되었던 내용들 이었다. 한반도 거주 순서는 동 - 남 - 서 순이 었고, 연어 이야기를 하자면 기가막힌 ‘강물연어 - 곰 - 나무 - 수온’ 메카니즘은 나비효과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요약을 시작하자면, 복잡해진 해안만 덕택에 패류가 신생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는 굴의 비중이 가장 높다. 영양가가 높고 채집하는데 큰 에너지가 들지 않기 때문에 가장 많이 채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큰 에너지가 들지 않는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기타 다른 경제생활과 시간적 측면에서 경쟁관계가 없다는점은 나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한강과 대동강에 위치한 암사동, 미사리, 지탑리 유적들 또한 동남해안과는 다르긴 하나, 어로 사회를 유지하였었다. 출토된 어망추의 개수를 통해 인구수를 유추하는 방식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계절별로 물고기나 기타 음식에 관련된 유추도 놀라운 사실들이었다. 갈돌과 갈판은 견과류를 채집해서 먹었다는 물증이고, 다양하게 출토된 마제석촉은 아직까지도 수렵이 생계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위 내용들은 신석기시대인들이 당시 본인들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해야 더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생산해 낼 수 있을지 효율성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증거로 보여 진다.
다음으로는 ‘강화된 식물체계’ 파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뚜렷한 사계절로 인해 과거에 계절별 먹었던 음식들의 유추가 가능한 편이다. 예를 들어 견과류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북부 추운지방과 남해안 근처를 제외한 내륙에서는 도토리와 같은 견과류의 채집이 어렵지 않았다. 도토리를 갈고 탄닌 성분을 제거하는 문제가 해결됨으로서 접근성이 쉬운 저장성재료로서 부각되게 된다. 저장성음식의 증가로 인해 자연스럽게 저장용그릇 문화도 발달되었을 것이다. 갈돌과 갈판의 형태에 따른 도토리 제분방식의 유추와 그에 따른 저장용 시설의 유무 유추를 할 수 있었다. 갈돌 갈판의 모양이 점점 효율적으로 변해감에 따라 생계자원에 있어서 식물재료의 비중이 높아져 감을 의미한다. 또 이는 저장용기의 발달에도 이바지 한 것과 신석기시대의 정착생활에 크게 한 몫을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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