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을 형성하는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8월 포츠담협정에 의해 결정된 미국․영국․프랑스 3국의 점령지구였다. 한편 베를린도 4개국 공동관리하에 놓여 있었으나 서방 3국과 소련 간의 점령 정책의 대립으로 관리이사회가 마비되어 동․서양 베를린으로 이분되었다. 1947년 6월 마셜플랜에 의해 서독이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아 1948년 6월 그 원조를 뒷받침으로 하여 통화개혁이 실시되었는데, 그 개혁은 서독 경제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서독의 신통화(新通貨)가 동독 내의 베를린에 흘러들어가 동독의 경제를 크게 혼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소련은 이른바 베를린 봉쇄를 감행하였다. 이에 맞서 서방 3국은 1949년 5월까지 약 1년간 200만 서(西)베를린 시민의 생활물자를 항공기로 수송하는 베를린 대공수를 실시하였다.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 분야에서 전개된 최초이자 최대의 동․서 냉전이었다. 서독정부의 수립은 1948년 봄 런던에서 소집된 6개국회의(미국․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에 의해 추진되었다.
1948년 9월 각 주(州)의 대표에 의한 헌법 제정회의가 본에서 열렸으며, 1949년 5월 8일 헌법초안이 채택되었다. 이 헌법 초안은 통일독일의 헌법제정회의가 보다 영구적인 헌법을 제정․시행하게 될 경우 효력이 상실된다는 이유로 헌법(Verfassung)이라 하지 않고 기본법(Grundgesetz)이라고 하였다. 그 기본법에 의해 8월에 연방의회 선거가 실시되었고 9월 7일 연방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초대 총리인 아데나워 정권은 1949년 11월 3국 고등판무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협정을 체결하여 국제기관에의 참가, 외국과의 영사관계 개설, 중요공업의 해체면제(解體免除) 등을 승인받았고 다시 1950년 9월 외국과의 정식 외교관계 수립 및 전독일을 대표하는 권리를 승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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