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종실록
1) 의료 복지의 실현
2) 의사고시와 의녀제도 시행
3) 의학 분야의 새로운 시도
4) 온천과 찜질방
4. 결론
본문일부/목차
1433년 유효통(兪孝通)과 노중례(盧重禮)는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에 의한 의약처방들을 집대성한 <향약집성방>을 저술하여 조선의학의 학문적 체계를 세웠다. 이것은 중국 의학의 영향과 전통하에 있던 우리나라 약학에 독자적 의약학 수립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것은 또 1442년경부터 시작된 <의방유취>의 편찬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1445년에 완성된 365권의 이 방대한 의약백과사전은 그때까지의 동양 의약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그후 조선 의학발전의 근간이 되었고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약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대하여 16세기에 완성된 또하나의 의학백과사전인 허준(許浚)의 <동의보감>은 도교의 사상적인 영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색이 있다. 1429년 정초와 변효문은 그 당시 조선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던 이른바 실험적이고 경험적인 농사 기술을 집약하여 <농사직설을 편찬했다. 이 농서는 우리의 농법을 살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어서 그후 조선 농학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쳐 조선 농서의 주축을 이루었다. 조선전기의 농서에는 이 밖에 강희맹의 <금양잡록>이 있고 숙종 때의 실학자 박세당(朴世堂)의 <색경>과 홍만선의는 농업관계의 박물지라고 할 수 있다.
1. 조선 전기 의약정책(醫藥政策)
1) 고려 의학(醫學)의 계승
조선초기의 의학은 의료제도 뿐만 아니라 의학의 학술적 측면과 향약 정책에서도 고려 의학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조선 초 의료제도 중 여말의 전의시(典醫寺)를 전의감(典醫監)으로 고친 것만 다를 뿐이고, 그 나머지의 혜문국(惠民局)과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은 고려 것 그대로 이어 썼다. 아울러 판사(判事), 감(監), 소감(少監), 승(丞), 직장(直長), 박사(博士), 검약(檢藥), 조교(助敎) 등의 관직명도 그대로 채택하여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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