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밤의 작가 윤영수의 작품과 작가론에 관한 발표문 입니다.
[참고자료]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존재와 시간』,
게오르그 루카치 지음, 『루카치 소설의 이론』,
노스럽 프라이 지음, 『비평의 해부』, 임철규 옮김,
이에 대한 논의는 그의 저서인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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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수는 시간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작가이다. 먼저 『착한 사람 문성현』에 실린 「벌판에 선 여자」, 「해묵은 포도주」, 「알몸과 누드」세 연작에서 이를 확인해보도록 하자.
“실례지만 몇 시나……”
(중략) 실례는 다섯 번째였다. 실례지만 지금 시간이, ……실례지만, 실례지만…… 12시 27분, 35분, 39분, 42분. (pp.5-6)
「벌판에 선 여자」의 주인공격인 연희는 이어질 연작 「해묵은 포도주」의 주요인물인 수정에게 시간을 묻는다. 이는 수정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저…… 실례지만 몇 시나 되었어요?”
“한 시 십 분인데요.” (p.10)
시간에 대한 연희의 물음은 또 다른 연작 소설인 「알몸과 누드」의 주인공인 상호에게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연희가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벽시계 하나 없”는 “백화점 로비”(p.28)에 있는 자리하고 있다. 비록 그곳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인 탓에 “초조히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기도 하”는 “네댓 명의 여자가 서 있”(p.5)는 곳이기도 하지만 연희처럼 이토록 시간에 신경을 쓰는 이는 없다. 그래서일까. 연희의 행동은 수정과 상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어딘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이처럼 시간에 집착하는 연희가 남편의 외도로 인해 착란을 일으키는, 즉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인물이라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시간을 인식한다는 것은 사라짐을 숙명으로 하는 존재의 본질에 눈뜬다는 것이고,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통에 직면하는 것은 언뜻 당연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러한 시간에의 지각은 시간의 흐름과 무상함에 대항하는 꿈을 꾸도록 유도한다. 이는 프랭크 커머드(Frank Kermode)가 상정하는 허구(fiction)의 발생과 일견 상통하며, 연희로 하여금 백화점 로비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다를 늘어놓도록 하는 원천인 것이다.
시간을 의식하는 사람은 비단 연희뿐만이 아니다. 「알몸과 누드」의 상호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사진사인 그는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대는 순간을 “덫에 잡히는 시간. 시간이 지르는 비명.”(p.101)으로 감각하는 인물이다.
그동안 시간은 흐르지 않았던가? 시간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의 카메라에 포획된 뭇 시간들은 카메라 속에 갇혀 죽어버린 것일까?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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