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력양성론과 구사상-구관습 개혁론 대두의 배경
1) 유학생 등 신지식층의 본격 등장
2) 일제의 산업정책과 사회 정책
2. 실력양성론과 그 성격
1) 실력양성론의 논리
2) 실력양성론의 내용
3) 실력양성운동으로서의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獎勵契)
4) 친일파의 `동화주의적(同化主義的) 실력양성론` 과의 차이
3. 구사상(舊思想)-구관습(舊慣習) 개혁론과 그 성격
1) 구사상-구관습 개혁론의 논리
2) 구사상-구관습 개혁론의 내용
3) 친일파의 `문명개화지상주의적 사회개량론`과의 차이
※ 서언
한말의 자강운동이란 `한국민족이 주체가 되어 교육과 실업을 흥함으로써 문화적-경제적 실력을 양성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을 달성함으로써 장차 국권회복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운동`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강운동은 그 내부에 네 계열이 있었다. 첫째 계열은 권력지향적 속성이 강한 대한협회 계열. 둘째 계열은 황성신문계열이다. 셋째 계열은 대한매일신보계열이고 넷째 계열은 청년 학우회 계열이다.
1910년의 `국망`을 계기로 대한협회계열은 대부분 운동에서 탈락하였고 황성신문계열의 경우도 박은식을 제외하고는 탈락하였다. 대한매일신보계열은 국외로 망명하거나 신민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었다.
191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사상계에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사조를 들고 나온 신 지식층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크게 `교육과 산업의 진흥`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실력양성론`과 구관습에 대한 비판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구사상-구관습개혁론`이었다. 이는 한말 `자강운동`의 실력양성론과 신문화 건설론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1910년대 신지식층들의 사상에 대한 검토는 `실력양성혼`을 축으로 하는 한국 근대 부르주아민족주의 우파의 단계적 발전과정을 해명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1. 실력양성론과 구사상-구관습 개혁론 대두의 배경
1) 유학생 등 신지식층의 본격 등장
(1) 학교와 학생 현황
° 1910년대 실력양성론과 구사상-구관습 개혁론의 주창자는 `신교육`을 받은 `신지식층`.
° 1906년 이후 국내에서의 신교육은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짐.
° 1910년 5월 학부대신의 인가를 얻은 사립학교의 수는 총 2,250개교 → 하지만 당시 학교들은 대부분 초등교육 내지는 중등교육 정도의 교육기관이었고 고등교육기관은 전무한 실정
° 1910년 이후 교육법이 바뀌면서 1915년 공립 보통학교의 수는 1910년에비해 3배 가까이 늘었으나 사립학교의 수는 절반정도로 크게 줄었다.
⇒ 1910년대 국내에서 `신교육`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교육은 `지식층을 길러내는 교육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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