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시대의 화장과 헤어스타일
. 통일신라시대의 화장 (統一新羅時代의 化粧)
. 고려시대의 화장
. 고려의 헤어스타일
. 발해(A. D 918∼962)
. 통일신라 시대의 화장 (統一新羅時代의 化粧)
신라의 삼국통일(668)을 전후하여 화장과 화장품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확연히 구분지을 만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통일 이전에 엷은 화장 위주의 화장 경향이 통일 이후에 다소 화려해진 듯하다. 여기에, 통일 이후 정국이 안정되고 문물이 융성해져 일상생활이 자못 사치해졌으므로 화장 역시 사치해졌을 것이다. 신라의 한 승려가 일본에서 연분을 제조할 만큼 신라에서는 이미 연분의 제조 기술이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고관이 나들이 할 때에 화려한 복장이 소년 소녀가 향화(香火)를 받들었다든지, 화랑의 화려한 치장으로도 입증되듯이 남자들 역시 멋내기에 열중했던 것 같다.
. 고려시대의 화장
통일신라의 화장문화가 계승·발전되어 외형적으로는 사치스러워졌고 내면적으로는 탐미주의 색채가 농후해졌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고려 귀부인의 화장에 대하여 `향유(香油)를 바르기를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를 즐겨 바르지 않았다. 눈썹은 크게 그리고, 검은 비단으로 만든 너울을 쓰고, 감람(橄欖)빛깔의 넓은 허리띠를 두르고 채색한 끈에 금방울(金鐸)을 달고, 비단 향낭(錦香囊)을 여럿 찼는데, 향낭을 여러 개 패용할수록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신분에 따라 화장이 다른 대표적인 예로서, 기생 중심의 분대화장들 들 수 있다. 분대화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분을 도포한 듯이 하얗게 많이 바르고, 눈썹을 가늘게 가다듬어 또렷하게 그리고, 머릿기름은 반직거릴 정도로 많이 바르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고려시대에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면약(面藥)이 쓰이고 염모(染毛)가 행해졌다. 면약은 남녀가 함께 손과 얼굴에 바르는 피부보호 겸 미백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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