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한문학과 이황
목차
Ⅰ. 시대적 배경
Ⅱ. 이황의 생애
Ⅲ. 陶山十二曲跋 李滉
Ⅰ. 시대적 배경
조선 왕조에 이르러서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이 펴졌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고려 충렬왕 때 안향에 의해 전해 져 온 성리학이 본격적인 이론 탐구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괄목할 만한 것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벌어진 사단과 칠정에 관한 논쟁과 이기의 해석을 두고 이황의 주리론과 이이의 주기론의 대립이라 하겠다.
왕조교체기가 지나고 성종대에 이르러서는 신왕조 교체기에 충절을 지켜 낙향, 沈潛性理하며 고향 선산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던 길재의 문인들인 영남 사림들이 대거 진출하였다. 조정은 물론, 학계와 문단은 훈구 사장파와 신진 사림파로 양분되어 끝내는 연산조에서 명종대에 걸친 사대사화의 비극까지 초래하게 된다. 그것은 곧 보수 훈구 세력이 시문학의 효용론적 정통성을 고수하며 사장의 중요성을 옹호하고, 신진 사림은 왕도정치의 이상론을 기치로 道本文末的 至治主義를 옹호하는 것이다. 사림파는 훈구파로부터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 정계를 장악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과 동인으로 분파되었다. 서인은 이이와 성혼이 중심이 되었으며, 동인은 주로 이황, 조식, 서경덕의 제자로 구성되었다. 이 중 동인은 이황의 제자를 중심으로 한 남인과 그 밖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북인으로 분리되며, 북인은 다시 대북·소북 등 여러 분파를 낳았다. 16세기 말 사림에 의한 정치는 지나친 도덕성의 추구와 붕당간의 대립,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으로 대외 정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여 왜란과 호란을 자초하였다.
Ⅱ. 이황의 생애
退溪 李滉의 初名은 서홍(瑞鴻)이고 자는 경호(景浩)·계호(季浩)이며 호는 퇴계(退溪)·도옹(陶翁)·퇴도(退陶)·청량산인(淸凉山人)이며 시호는 문순(文純), 관향(冠鄕)은 진보(眞寶)이다. 퇴계는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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