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문 사
. 향토지적재산의 형성배경과 경위
강화도의 서편 바다에 길게 뻗어 있는 섬. 석모도에는 해명산(327m), 상봉산(316m), 상주산(264m) 등 3개의 산이 있어 그 봉우리가 한자의 산자(山字)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로부터 삼산면이란 지명이 유래되었으며,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에 보문사가 위치한다. `보문`이란 중생을 구제하려는 관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의미한다. 보문사가 있는 산에도 보문사 창건 당시에 `낙가산`이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낙가`라는 말은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남해의 섬을 말하는 것이다.
(1) 형성배경 (창안동기)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곳에 와서 보문사를 창건하였다.
(2) 경위 (전개 또는 발전과정)
회정선사가 이 절을 창건한 후 11년만에 절 아래 바닷가에서 어부가 불상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건져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했으며, 그 동안 수차에 걸쳐 중수하여 지금의 모습이 전설과 함께 세월 따라 흘러오고 석굴에는 약수가 있어 한층 기이한 유적이 되었다. 그 유명한 보문사 석실의 나한상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 선덕여왕 649년, 따뜻한 봄 5월에 보문사 아래 매음리의 어부들은 새봄을 맞아 풍어를 염원 하면서 배를 타고 보문사 앞바다로 나아갔다. 고기잡이 그물을 바닷속에 내렸다가 거두어 보니 굉장히 무거운 것이 딸려 와 큰 고기로 예상하고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막상 그물을 올려보니 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인형 비슷산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크게 실망하여 돌덩이를 즉시 바다에 쏟아 버리고 새로 그물을 쳤더니 역시 이 돌이 또 걸렸다. 그럭저럭 날이 저물어 어부들은 할 수 없이 그날은 각기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밤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하는말이 `그대들은 어찌하여 귀중한 것을 2번씩이나 바다에 던졌느냐` 하고 책망했다. `내일 다시 그물을 치면 그 돌덩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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