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종교와 정치
`정교분리`라는 입장이 역사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이해할만한 입장이지만 그것이 한국교회 안에서는 `영육의 분리`, `정치적 기독교` 또는 `정치 불참여` 등으로 잘못 이해되고 적용된 것을 지적. 양자간의 관계를 `분리`가 아닌 `변증법적 균형`, `창조적 긴장`, `예언자적 역할`의 관계라고 지적.
1987년 2월 14일 서울대생이었던 박종철 군이 한 수사관의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경찰은 그가 심문을 받던 중 물 속으로 처박히면서 욕조 가장자리에 목이 눌려 협착증세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박 군을 부검한 의사는 그가 전기고문으로 인한 응혈(凝血) 때문에 사망했던 것으로 밝혔다. 1987년 2월 26일 카톨릭 교회에서는 박종철 군을 위한 미사를 드렸으며, 2000명의 카톨릭 교인들과 150명의 사제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박종철의 사망은 전 국민이 군사정부에 저항하도록 결집시켰으며 1987년 봄에 있었던 대규모 시위의 원동력이 되었다. 시위대들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시녀였던 1972년의 유신헌법의 개정을 요구하였다. 유신헌법은 대통령 간접선거제로 인한 조작 선거의 위험이 있었으며 정부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다. 시위대들은 전면적인 헌법 개정을 통한 민주화와 한국정치와 정부의 개혁을 요구하였다.
종교와 정치가 일치할 때의 부작용은 이미 알아온 바다. 중세시대 권력화한 교회세력의 부패는 극심한 혼란을 야기했다. 특정 종교를 기반으로 한 집단이 타 종교에 관용적이지 못함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정교분리가 원칙이고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정교분리를 헌법화 했다고 해서 종교집단의 정치적 행보를 완전히 가로막은 것은 아니다. 우리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종교의 권력화이지 비판자적 정치참여는 아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종교의 특수성과 높은 영향력을 어떤 방향으로 구현하는가’이다. 상황에 따라 종교인의 정치참여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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