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학습
연개소문(淵蓋蘇文, ~ 666, 보장왕 25)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장군이면서 정치가로서, 개금(蓋金) 또는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가 수, 당과 대립하여투쟁하던 시기에 성장하여 반란으로 정권을 잡았고, 그가 죽고 난 뒤
몇 년 되지 않아 고구려는 멸망하였다.
연개소문은 소년 시절에 수나라의 침략을 겪었고, 을지문덕의 뛰어난 용맹을 듣고 자랐으며,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되는 국제 정세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대범하고 거침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가슴에 품은 뜻이 남달리 웅대했던 연개소문은, 아버지인 동부대인(東部大人) 태조 아래에서 무인으로서, 정치가로서 수련을 쌓으며 자랐다.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대담한 성품이 말썽이 되어 문제가 일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죽자, 연개소문이 관례대로 아버지의 직책을 이어야 마땅했으나, 사람들이 그의 포악한 성격을 문제삼아 계승하지 못하게 하였다. 연개소문은 머리를 숙이고 여러 사람들에게 사정하며, 그 직책을 계승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뭇 사람들이 이를 가련하게 여겨 연개소문으로 하여금 벼슬을 계승하게 하니, 이때 그의 나이 15세였다고 한다.
그 후, 막리지(莫離支)가 된 연개소문은 항상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 말을 타고 내릴 때에는 부하를 땅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등을 밟고 오르내렸다. 또, 길을 갈 때에는 부하들을 앞장서게 하여 길을 인도하게 하고, 소리를
질러 사람들이 행차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는 이처럼 성품이 호방하였으나, 동시에 안하무인이어서, 여러 신하들은 그를 죽이고자 임금과 몰래 의논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미리 알아챈 연개소문은 642년 영류왕과 반대파 중신들 180여 명을 죽이고 스
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독재를 하였다. 그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쳐서 당항성(黨項城)을 빼앗았으며, 643년 당나라의 숙달 등을 초청하여 도교를 퍼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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