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의 흐름
백 수 인
서구적 충격과 근대시의 형성
우리의 근대적 각성은 조선 말기인 19세기 중엽부터 싹트기 시작하였다. 특히 개항과 함께 밀려 온 서구 문물과 사상은 우리 사회를 급속한 속도로 변화시켰다. 기독교와 동학을 통하여 한글 보급 운동이 확산되었고, 이와 함께 근대적인 신문과 잡지들이 속속 간행되었다. 이와 같은 전반적인 사회 문화적 변동에 따라 우리 시단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시가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동학가사, 의병가사, 창가, 신민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개화기 시가들은 그 형식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가사체 문학을 계승하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대의 지향이 잘 드러난 것들이다. 뒤이어 1910년대에 이르러 나타난 이승만, 최남선, 이광수, 신채호 등의 신체시, 항일 의병들의 애국 시가, 그리고 독립 투사들의 독립군가는 개화기 시가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들은 다음 시기의 자유시를 이루는 기틀이 되었으며, 아울러 시문학의 흐름 속에서 민족 주체적 창조 정신을 확고히 이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시가와 신체시의 뒤를 이어 근대시가 형성되는 데는 외국 문학의 번역이 주효한 역할을 하였다. 문예 주간지 泰西文藝新報 (1918)가 발행되면서 서양의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문학이 백대진과 김억에 의해 소개되었다. 김억은 번역 시집 “懊惱의 舞蹈”(廣愛書館, 1921)를 간행하였는데, 이 시집은 베를렌느, 구루몽, 싸맹, 보들레르, 예이츠, 시몬즈 등의 작품을 번역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서양시 번역 작업은 자유시 형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서정시의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김억은 창작시 “밋으라”를 필두로 “오히려”, “봄”, “무덤”, “봄은 간다”( 태서문예신보 , 1918.11)를 발표한 이후, 시집 해파리의 노래 (朝鮮圖書株式會社, 1923)를 간행하였다. 이러한 초창기 우리 시단에 대한 김억의 업적은 우리 나라 현대시의 풍향을 결정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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