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소설 텍스트 편력시대
― 상자의 모티프를 중심으로
기호론적 관점에서 다시 읽기 ―
이 연 희 (목원대 강사)
. 들어가는 말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에서 작은 상자(K stchen)의 모티프는 양적으로 짧을 뿐 아니라 소설 속에서의 위치도 한군데 집약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걸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작품 구성적 의미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언뜻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상자에 관한 이야기는 에피소드로서 소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그리고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줄거리상 매우 산만하게 전개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1) 심층적 의미 지평에서 모아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특히 편력시대 의 주줄거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인 빌헬름, 헤르질리에 그리고 펠릭스의 미묘한 관계는 상자의 모티프에 매개되어 서술되며 이는 다른 곁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상자의 모티프와 소통관계를 이루면서 ‘체념’이라고 하는 작품의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본 논문은 편력시대 에서 작은 상자라고 하는 구성적 모티프가 갖는 주제 및 서술방식과의 관계, 그리고 거기에 함축된 시론적 의미를 기호론의 관점에서2) 살펴보고자 한다.
. 상자의 기호
작품 처음에서 끝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 산재되어 있는 작은 상자의 모티프가 전체 이야기 안에서 어떠한 의미작용을 하는가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뜻밖에도 이미 19세기 초에 씌어진 괴테 만년의 장편소설 편력시대 를 매우 현대적인 관점, 즉 기호론적인 관점에서 다시 한번 읽어 보게끔 한다. 여기서 상자는 단순히 상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 특정 의미와 동일시됨이 없이 사람과 사람,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을 매개하고 매번 상이한 방식으로 의미화되는 하나의 기호이다. 예컨대 언니와 동생, 두 자매 사이에 결혼 파트너가 바뀌는 소설 속의 노벨레 발설자가 누구인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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