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카사크 『강물 뒤의 도시』삶의 뒤안을 흐르는 죽음의 강물류수안모든 죽어 있는 것들과 죽어가고 있는 것들 속에 그 희곡 작가는 홀로 서 있었다. 진행되어 가고 있는 연극의 주연 배우이기도 한 그의 무릎 아래로는 여름날의 풀밭을 연상시키는 조명빛이 푸르렀다. 그 푸른빛의 한가운데에 배우는 열심으로 제 무릎 아래의 그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풀밭을 뒤져 그 곳에 묻혀 있는 죽은자의 숫자를 파악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한껏 경직되어 있었다. 드디어 배우가 발등 위의 그 빛으로부터 고개를 들어올렸다. 넋 놓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의 시선과 마주치자 놀라듯 대본에도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풀밭에 뒹구는 죽은 자에 불과한 저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베르길리우스의 시 한 구절로 암시한 죽음에의 열락을, 베토벤의 어떤 음표를 모방하여 저지른 살인을 모를 것이다. 고호의 밀밭 위를 날으는 까마귀 중 정중앙을 날고 있는 까마귀의 각도가 나타내 보인 죽음을 모를 것이다. 그만큼 그가 연극으로 드러내보인 죽음의 형태들은 교묘했고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연기 또한 완벽에 가까운 수준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작가는, 배우는, 자부심에 넘친 얼굴로 이제 마지막 한 대사만을 남겨 놓고 있는 오늘의 이 연극이 관객들의 넋속에 일으켜 가고 있는 파장을 바라보았다. 무대에 넋을 빼앗겨 있는 그들의 얼굴은 검푸른 빛 속에서 고요했다. 감격한 배우는 시선을 관객석의 천정에 고정시키며 말하였다. ‘현실은 최대의 기적이다.’ 이윽고 막은 내려졌다. 가까스로 무대가 주는 마력에서 깨어난 관객들이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출연 배우 중 유일하게 살아 남은 주연 배우는 무대로 뛰어나갔다. 바로 그때였다. 줄거리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 믿고 있던 관객들이 어느 사이 작가가 미처 쓰지 못한 다음 대사까지를 알아 내었는지 주연 배우를 향하여 이구동성으로 외쳐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죽은 사람들도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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