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운동의 발단은 1883년 맥크무르도(A.H.Mackmurdo;1851-1942)가 크리스트 퍼렌의 <도시 교회당>(City Churches)이라는 책의 장정을 한데서부터 시작한다. 길고 섬세한 곡선, 환상적인 백합의 줄기, 곤충의 촉수, 실꽃, 이것들이 서로 얽힌 모양, 모서리에서 자라온 화면을 구불거리며 채운 식물모양, 이런 것들이 아르 누보의 현저한 장식수법이다.
맥크무르도의 이런 종류의 문양(紋樣)의 직접적인 동기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st), 즉 버언 죤스라든가 로제티의 회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더우기 아르 누보운동은 19세기말에 예술의 중심지의 감이 있던 부류셀의 예술성이 높은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생각된다.
1880년에서 1890년 사이의 부류셀은 대중에게 경멸당하고, 무시당한 창조적 예술사들을 환영하고 그들의 말에 유심히 귀를 기울인 높은 문화도시였다. 여기에 1881년이래 <라르모데르네>(L`Art Moderne)라는 잡지가 간행되어 그 창간호에는 “예술은 인간환경을 개혁하고, 새로운 이상에 일치시키려고 하는 인간 영원의 자발적 자유행위”라고 말하여 아무러한 곳에도 속박을 받지 않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제창하고 나섰다. 이 평론 잡지는 곧 이어 “르 반티엠(Les XX)`이라는 젊은 에술가 그루프를 결집시켰다. 이 중에는 핀치(A.W.Finch)도 있어 그는 1891년 영국에서 모리스의 공예품을 사들여 이것이 그들 그루프를 감동시킨 끝에 영국의 공예운동을 벨기에에 연결하였다.
“레 반티엠”이 다음다음 개최한 전람회는 매우 대담하였다. 1884년에는 로댕(Rodin), 크놉프(Khnopff), 앙소르(Ensor), 휘슬러(Whistler) 등, 1886년에는 모네(Monet), 르노아르(Renoir), 르동(Redon) 등, 1887년에는 스라(Seurat), 1888년에는 로오뜨렉(Toulouse Lautrec)과 시니약(Signac)
등, 1889년에는 고오갱(Gauguin), 1890년에는 세잔느(Cezanne), 고흐(van Gogh), 시슬레(Sisley) 등, 1892년에는 약간의 스테인드 글래스, 자수, 도기, 책의 장정, 즉 응용예술이라고 멸시당하여 오던 작품들이 당당히 전시되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아르 누보의 중심인물인 반 데 벨데와 빅터 오르타는 강한 영향을 받았다. 또 다른 면으로는 1890년부터 시작한 비어드즐리(Aufrey Beadsley : 1872-1898)의 많은 삽화, 투우롭(Toorop : 1858-1928)의 “삼인의 자매”, 홀더(Holder;1853-1918)의 “선발된 사람”, 데니스(Denis;1870-1945)의 “4월”, 뭉크(Munch;1863-1944)의 “통곡”, “마돈나” 등의 회화가 작용하여 점차로 유럽 전역에 만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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