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학을 만든 사람들(미래사)
2. 수학의 황제 가우스(경문사)
3. 네이버 백과사전(www.naver.com)
4. 數學의 世界(서울大學校 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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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일부/목차
1. 가우스의 유년기와 대학 재학 시절
2. 천문학
3. 수론과 함수론
4. 물리학에서 가우스의 업적
5. 말년 1. 가우스의 유년기와 대학 재학 시절
가우스는 독일의 수학자이며, 관측자이고 대수학과 해석학 그리고 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진다. 수학에 이른바 수학적 엄밀성과 완전성을 도입하여, 수리물리학(數理物理學)으로 부터 독립된 순수 수학의 길을 개척하여 근대수학을 확립하였다. 한편 물리학, 특히 전자기학(電磁氣學)·천체역학(天體力學)·중력론(重力論)·측지학(測地學) 등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브룬스비크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궁한 가운데 성장하였지만, 일찍부터 뛰어난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어머니와 숙부의 노력으로 취학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소년 가우스를 가르치는데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희망으로 남편과 싸워 승리를 쟁취하였고 외삼촌 프리드리히는 총명한 조카의 발전을 위해 소년 가우스의 기민한 두뇌를 단련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주었다. 3살 때 아버지의 계산이 틀린 것을 지적해주고 10세 때 등차급수의 합의 공식을 창안하는 등 신동(神童)으로 알려져 브룬스비크공(公) 페르디난트에게 추천되어, 카롤링 고교를 거쳐 괴팅겐 대학에 진학하였다.
고교시절에 이미 정수론(整數論)이나 최소 제곱법(最小自乘法) 등으로 독자적인 수학적 업적을 올렸는데, 괴팅겐 대학 재학 시절에 정 17각형의 문제에 열중한 것이 수학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사실 가우스는 언어학에도 큰 관심이 있었고 다분한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수학과 언어학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가우스가 수학을 택하게 된 것은 수학의 발전에 있어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정17각형은 가우스로 하여금 이 루비콘 강을 건너게 한 행운의 주사위가 되었다. 이날부터 가우스는 『과학일기』(Notizenjournal)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수학사에서 가장 귀중한 문헌 중의 하나로 첫 페이지부터 그의 대발견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일기가 학계에 전해진 것은 가우스가 죽은 후 43년이 지난 1898년이었으며, 괴팅겐 왕립협회가 비판연구를 위해 이것을 가우스의 손자로부터 빌린 것이 그 인연이었다. 그것은 46판 19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발견이나 계산의 결과에 관한 146개의 사항이 지극히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1814년 7월 9일자로 마치고 있다. 그 복사는 수 명의 전문편집자가 자상한 해설과 함계 1917년 가우스전집 제 10권(제1편)으로 간행되었다. 이것은 1796년부터 1814년에 이르는 가우스의 다산한 활약기 중에 한 발견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간단하게 쓰여진 많은 사항은 동시대인이 가우스의 우선권을 부인했던 몇 가지 영역, 예컨대 타원함수에서 그의 우선권을 확립하는 데는 충분한 것이었다. 발표되면 당장이라도 반 다스 정도나 되는 몫의 위대한 명성을 있을 수 있을 만한 것이 수 년 또는 수십 년이나 이 일기 속에 잡자고 있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가우스의 생존중에는 발표되지 않았던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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