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1.『수원』지역의 역사적 배경
2.『수원』지지(地誌) ㆍ 읍지(邑誌) 현황과 자료 분석
1) 지지 ㆍ 읍지 현황
2) 자료 분석
맺음말. 2.『수원』관련 地誌 ㆍ 邑誌 현황과 자료 분석
(1) 지지 ㆍ 읍지 현황
<표>
(2) 자료 분석
1) 삼국사기 지리지
『삼국사기』지리지는 당시 군현의 소속 관계와 지명의 변천을 간략히 기록한 것으로,『삼국사기』50권 중 34 ~37권의 4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 중 34 ~36권은 신라, 37권은 고구려ㆍ백제의 지리지로 편제된 것이다. 『삼국사기』지리지의 수원에 관한 기록은 권35, 잡지(雜志)4, 지리2, 수성군(水城郡)에 기록되어 있다. 백제 시대 수원의 옛 지명은 전하지 않는 대신 장수왕의 남하로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된 후의 지명 ‘매홀(買忽)’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수성군은 본래 고구려의 매홀군인데, 경덕왕이(水城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수주(水州)이다.”
여기에서 매홀군은 고구려의 남진정책의 결과 수원 지방은 장수왕 63년(475)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켜 한강 유역 일대를 점유하는 시기부터 羅濟동맹군이 한강 유역을 탈환하는 양원왕 7년(551)까지 약 76년간 고구려 영유하에 놓여 있던 시기의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신문왕 5년(685) 9주로 정비되고 5소경제가 시행될 때 수원 지방은 신라의 영역 하에서 한주(漢州)의 소속 군현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경덕왕 16년(757) 한식 이름인 매홀군 → 수성군으로 개칭되었다.
2) 고려사 지리지
『고려사』지리지는 『고려사』137권 중 56 ~58권의 3권으로 편제되어 있는데, 시기적으로는 고려가 건국되던 918년에서 고려가 멸망하던 1392년까지 474년간 각 주현의 연혁을 간략히 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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