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의 창시자(재위 1206~1227). 묘호(廟號) 태조(太祖). 아명 테무친[鐵木眞]. 바이칼호 근처 출생. 칭기즈란 고대 터키어인 텡기스(바다)의 방언이었다고도 하고, 1206년 즉위하였을 때 5색의 서조(瑞鳥)가 ꡐ칭기즈, 칭기즈ꡑ 하고 울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샤머니즘의 ꡐ광명의 신(Hajir Chinggis Tengri)ꡑ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태어난 연도에 대해서는 1155년, 62년, 67년 등의 이설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되어 부족이 흩어졌기 때문에 빈곤 속에서 성장하였고, 당시 강세를 자랑하던 케레이트 부족의 완칸 아래서 점차 세력을 키워, 1189년경 몽골씨족연합의 맹주(盟主)에 추대되어 칭기즈칸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1201년 자다란 부족의 자무카를 격파하고, 타타르․케레이트를 토벌하여 동부 몽골을 평정하였으며(1203), 군제(軍制)를 개혁한 후 서방의 알타이 방면을 근거지로 하는 나이만 부족을 격멸하고(1204) 몽골 초원을 통일하였다. 1206년 오논 강변 평원에서 집회를 열고, 몽골제국의 칸에 오르면서 씨족적 공동체를 해체, 군사조직에 바탕을 둔 천호(千戶)라고 하는 유목민집단을 95개 편성하였다. 천호 및 그 하부조직인 백호는 동시에 행정단위이며, 천호장․백호장에는 공신들을 임명하여, 이들을 좌익(左翼)․중군(中軍)․우익의 만호장 지휘하에 두었다. 또 케시크테이라고 하는 친위대를 설립하고 천호장․백호장의 자제로 편성하여 특권을 부여, 몽골 유목군단의 최정예 부대를 구성하였다. 즉위한 이듬해 서하(西夏)를 점령하고, 금(金)나라에 침입하여 그 수도인 중도(中都:지금의 베이징)에 입성하였다(15). 한편 앞서 멸망된 나이만의 왕자 쿠출루크가 서요(西遼)로 망명하여 그 나라를 약탈하였기 때문에, 부장 제베를 파견하여 토벌한 후에 병합하였다(18). 또 서아시아 이슬람 세계의 패자(覇者) 호레즘국과 교역하려고 파견한 사절단이 살해되자, 이것을 계기로 서정(西征)에 올랐다(19). 오트랄․부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