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Cocteau Cocteau 진콕토 콕토 / ジャンコクト─ 全集 全8卷 : Jean Cocteau, 堀口大學ほか 譯, 創元社, 1980 - 86
몽마르뜨의 축제(한권의 시 19) : J. 콕토, 안민재 역, 태학당출판사, 1993
무서운 아이들(마로니에북스 7) : J. 콕토, 강경화 역, 청림출판, 1989
협잡꾼 또마(세계문학 42) : J. 콕토, 홍순만 역, 정음문화사, 1986
프랑스 문학사 : 송면, 일지사, 1981 (인물)
본문일부/목차
1. 유산과 젊은 시절
2. 라디게의 영향
3. 1940년대의 영화 제작
4. 참고문헌 유산과 젊은시절
콕토는 파리에서 성장했으며, 말투·교육·사고방식·습관 등에서 언제나 자신을 진정한 파리 사람으로 여겼다. 그의 집안은 명실상부한 파리의 부르주아 계층에 속해 있었고, 그런 집안답게 교양이 넘치고, 부유하고, 음악·미술·문학 등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어린시절 기억은 극장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기억은 서커스나 고급 유흥장에서 펼쳐지는 흥행물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고,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공연되는 진지한 비극의 형태로 남아 있기도 했다. 19세에 그는 첫 시집 〈알라딘의 램프 La Lampe d'Aladin〉를 출판했다.
콕토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몇 해 동안 말하자면 정치적 혼란이 전혀 없이 세련된 예술적 취향이 장려되던 시절의 산물이었다. 그가 무대 예술에 실질적인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러시아 발레단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였다. 콕토가 발레극을 쓰고 싶다고 의견을 밝히자, 당시 러시아 발레단 감독을 맡고 있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나를 한번 놀라게 해보라"(Étonne-moi)라고 응수했다. 이 한 마디는 결국 젊은 시인으로 하여금 〈파라드 Parade〉(1917, 에리크 사티가 곡을 붙임)· 〈지붕 위의 황소 Le Boeuf sur le toit〉(1920, 다리위스 미요가 곡을 붙임) 같은 발레극뿐만 아니라 다른 극작품도 쓰게 만든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유명한 한 마디는 그의 연극과 영화에도 종종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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