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는 당 현종(玄宗)이 즉위한 해인 선천(先天) 1년(712)에 허난 성 궁 현에서 태어났다. 현종 45년간의 치세중 그 전반부인 개원연간(開元年間 : 713~741)은 당의 전성기였다. 초당(初唐)의 이름높은 시인 두심언(杜審言)의 손자이기도 한 두보는 7세 때부터 시를 지었다는 조숙한 소년이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뤄양[洛陽]의 숙모 밑에서 자랐는데 그의 시에 대한 재능은 일찍이 뤄양의 명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젊었을 때부터 술을 좋아했고 강직한 성품을 드러냈으며 연장자들과 교류를 즐겼다. 20세를 전후하여 8,9년간 각 지방을 유람했는데, 처음에 장쑤 성[江蘇省]과 저장 성[浙江省]을 여행하고 24세에 일단 뤄양으로 돌아왔으나 진사(進士) 시험에 낙제하고는 다시 여행길에 나서 산둥 성[山東省]과 허베이 성[河北省]을 유랑했다. 이때 명산대천을 보고 많은 시를 썼다고 하나 이 시기의 시는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개원 28년(740), 29세 때 당시 산둥 성 옌저우[州]에서 관리로 있던 아버지 두한(杜閑)을 방문했을 때 지은 시가, 남아 있는 두보 시 중 가장 초기의 것이다. 다음해 산둥 성에서 돌아와 평생의 반려자였던 부인 양(楊)씨를 맞아들였다. 안사(安史)의 난(755~763) 후에 지극히 궁핍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중에도 두보는 늘 부인과 함께 다녔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게 되면 항상 처자의 신상을 염려하는 애정이 넘치는 시를 짓곤 했다. 이즈음 그는 벌써 30세나 되었는데도 전도가 열리지 않은 탓인지, 억압당하고 있던 정신이 때로는 대상을 찾아 날카로운 어조의 시로 표현되었다. 그는 전대의 시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빈약하고 엉성한 내용을 수식어로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참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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