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15세기(조선 전기) 위대한 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본관은 강릉이며 자는 열경(悅卿)이며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설잠(雪岑)이고 시호(諡號)는 청간(淸簡)이다.
서울 성균관(成均館) 성균관(成均館) : 한국 최고의 학부기관으로서 ‘성균’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인 1289년에 그때까지의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의 명칭을 ‘성균’이라는 말로 개칭하면서부터이다. 충숙왕대인 1308년에 성균관으로 개칭되었고, 공민왕대에는 국자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362년에 다시 성균관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조선 건국 이후 성균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존속되어, 1395년부터 새로운 도읍인 한양의 숭교방(崇敎坊) 지역에 대성전(大聖殿)과 동무(東)․서무(西)․명륜당(明倫堂)․동재(東齋)․서재(西齋)․양현고(養賢庫) 및 도서관인 존경각(尊敬閣) 등의 건물이 완성되면서 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성균관은 태학(太學)으로도 불리었으며, 중국 주나라 때 제후의 도읍에 설치한 학교의 명칭인 ‘반궁(泮宮)’으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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