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머리말
2. 양동마을의 배경과 형태
① 양동마을의 형성배경
② 양동마을의 형태
3. 관가정의 배경과 명칭
①관가정의 건축 배경
②관가정의 뜻
4.관가정의 진입
①관가정으로 가는 길과 담장 그리고 대문
②대문안 사랑채로의 진입
③안채로의 진입
④사당으로의 진입
5.관가정의 공간분석
①대문
②사랑채
③안채
④사랑채 우측에 있는 부엌과 방
⑤사당
6.관가정의 특징
①자연스러운 곡선재 사용
②지붕선의 겹침
③안마당의 공간감
④마감재
7.관가정의 전체적인 흐름
8.맺음말 (답사후의 소감)
① 양동마을의 형성배경
양동마을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월성군 강동면에 속하며, 경주포항간 철도 중 경주기점 16㎞지점에 위치해 있다. 문헌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는 이곳에 牙山將氏가 거주했으며 부락명을 良佐村이라 했으나 약 550년 전에 안강현 양좌동으로 개칭했다.
이 부락의 入鄕祖는 月城孫氏 4世 孫士晟의 次子인 襄敏公 孫昭(1433~1484)로 그가 처음 이 부락에 입향하여 현재의 월성 손씨 宗家를 건축하였다.(약520년전) 손소는 이 부락에 입향하여 5남 1녀를 두었는데 그중 둘째 아들인 㑖暾(1463~1529)은 호를 愚齊라 하고 사조판서와 좌우참판을 지낸바 있다.우재 선생의 여동생인 손씨 부인은 여강이씨 10세손 蕃에게 출가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장자가 당대 明儒이며 조선왕현의 한 사람인 晦薺 이언유(1491~1553)이다. 그후 이 마을에서 월성손씨와 여강이씨 자손이 번성하여 兩同族이 존재가 두드러진 이성 지배 동족부락이 되었다. 마을에는 동제가 없어 서낭당은 없으나 타부락에 비해 종가와 파종가가 많고 사당이 4당, 영당이 2동, 정자가 10동이나 있다. 이는 이 부락민의 생활이 유색이 짙은 사대부계급의 생활형식이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음과 유교적 인 대가족주의와 동족이념에 의해 좌우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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