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연구 강의 과제 !!
[참고자료] 『금오신화』의 연구사적 검토와 쟁점, 김광순, 한국문학언어학회(구-경북어문학회), 어문론총, 1999.
본문일부/목차
1. 작가
2. 시대적배경
3. 줄거리
4. 연구성과
5. 감상 및 비평
본문요약
6. 이생규장전
6.1. 작자
김시습(金時習 1435∼1493(세종 17∼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췌세옹(贅世翁). 본관은 강릉(江陵). 태어날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는데, 3살에는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았을 뿐 아니라 《소학(小學)》 등도 읽어 그 뜻을 통달했다 한다. 5세 때 수찬(修撰) 이계전(李季甸) 문하에서 글재주가 더욱 무르익었으며, 세종대왕 앞에서 글을 지어 올리니 왕이 감탄하여 칭찬하고 비단을 선물로 내렸다. 15세 때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여막(廬幕)을 짓고 3년상을 치른 뒤 1455년(세조 1)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나흘 동안 두문불출 단식한 뒤 읽던 책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하고 방랑길에 올랐다.
58년(세조 4) 관서지방(關西地方)의 유람을 마치고 《탕유관서록후지(宕遊關西錄後志)》를 썼으며, 60년(세조 6) 관동지방(關東地方)의 유람을 끝내고 《탕유관동록후지(宕遊關東錄後志)를 썼다. 또 63년(세조 9) 삼남지방(三南地方)을 유람한 뒤 《탕유호남록후지(宕遊湖南錄後志)》를 지었다. 그해 효령대군(孝寧大君;世祖의 叔父)의 권고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의 일을 맡아 보았으나, 65년(세조 11) 다시 서울을 떠나 경주로 내려가 남산(南山)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독서를 시작하여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창작하였다.
2년 뒤 다시 효령대군의 청으로 원각사(圓覺寺) 낙성식에 참석하였다가 68년(세조 14) 금오산에서 《산거백영(山居百詠)》을 썼고, 76년(성종 7)에 《산거백영후지(山居百詠後志)》를 썼다. 81년(성종 12) 47세로 환속(還俗)하여 85년(성종 16)에 《독산원기(禿山院記)》를 썼다. 한평생 절개를 지키며, 불교와 유교의 사상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한세상을 풍미하다가 93년(성종 24) 59세로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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