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珠와 주宙
내가 태어나서부터 전세만 살던 우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가 되던 해에 우리가 주인인 집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살게 될 집을 계약하고 돌아오신 아빠는 나에게 서류를 보여주시며, 글 못 읽는 동생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명의자 이름을 가리키시며 읽으라고 하셨었다. 뿌듯한 아빠의 표정과,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던 아빠의 이름, 그리고 길 잃으면 경찰서에서 불러야 하는 집주소를 외우던 것이 아직도 아른아른 기억이 난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나가고 벽지나 장판을 깔기 전, 을씨년스러웠던 그 새집에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과 구경을 갔었다. 엄마와 아빠는 아직 벽지를 바르지도 않은 그 낯선 곳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여기엔 진주 책상을 놓고, 저기엔 진선이 책상을 놓고...” 라시며 서로의 구상들을 마구 던지셨다. 엄마와 아빠는 그 집에서 좀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지만, 어린 나에게 어둡고 컴컴한 그 곳은 무섭기만 한 곳이지, 집이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이사하는 날이 다가오자, 그 전날 장판을 깔게 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두컴컴하게 땅거미가 질 때 쯤 에야 장판을 고르러 갔던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두 분은 열심히 장판을 까셨다. 장판을 다 깔고 나서 새집에서 첫 잠을 자던 그 날 밤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도 시커멓게 보이고 무섭고 정이 안 가던 그 새집에 등을 대고 눕자, 왠 일인지 편안하고 안도감이 느껴졌다. 낯설고 어색했던 그 공간은 등을 댐과 동시에 내 집으로 바뀌었다. 나의 가장 무방비한 상태인 등을 그 낯선 공간에 맡기는 순간, 그 곳은 이제부터 나의 비밀과 희로애락이 함께 할 곳이 된 느낌이었다. 새 집에서 첫 잠을 자던 날, 문득 갑자기 엄마 아빠가 이 집 말고 다른 데로 또 이사 가자 하거나, 다시 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 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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