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건국신화를 보면 알바롱가 왕국의 왕 누미토르의 딸과 군신(軍神) 마르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의해 로마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초대 왕인 로물루스는 도시의 확대를 위해 외부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시민권을 관대히 부여하여 고대 그리스의 도시와 달리 개방적인 도시를 추구했다. 로마도 이처럼 초기에는 왕정 사회였다. 그들의 왕위 계승은 세습이 아닌 귀족의 의한 선출이었으며 일대일 승부의 소규모 전쟁에서의 무용과 전리품을 통해 왕과 귀족의 권력을 유지하는 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나 왕정기 후반 중장보병 전술이 일반화 되자 전쟁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싸우게 되었다. 이것은 곧 체제를 흔드는 계기가 되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체제를 변화시켰다. 그 이유는 이제 전쟁은 귀족들의 전유가 아닌 중장이 가능한 자산가 즉, 토지를 소유한 농민이 국방의 담당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전투는 개인기 보다는 단결력이 중요하게 되었고 시민으로서의 의무가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509년에 왕정을 폐지하고 집정관이 왕의 명령권을 이어 받음으로써 공화정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영토 확장과 병행하여 공화제도 정비되고 공화정을 지탱하는 정무관직은 기원전 4세기 무렵 거의 갖추어졌다. 로마의 정무관직은 상근 정규기관으로서 매년 민회에서 선출하였다. 임기는 1년으로 연임은 되지 않았고 상호 거부권을 가진 동료제가 특징이다. 이는 왕권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독재자의 출현을 막는 제도였다. 그러나 비상시에는 독재관을 집정관이 임명하여 비상시의 대권을 부여했다. 그의 임기는 6개월 이내였고 부관으로서 기병장관을 임명하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비상시의 정무관이었다. 정무관직은 혈통귀족이 독점했기 때문에 이에 불만을 가진 평민과의 마찰이 일어났다. 그리고 정무관의 판결에 거부할 수 있는 평민 보호정책인 호민관이 민회에서 승인된다. 이것은 평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이...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