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답사를 다녀와서...... 저는 이번 답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 처음에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복학하고서 다른 학우와의 관계가 친밀하지 못했고 같은 동기들은 졸업을 한 상태라서 학교생활 자체가 어색하고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답사를 다녀온 뒤에 아직 졸업하지 않은 동기들도 만날 수 있었고 후배들의 얼굴도 익힐 수 있어서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한 답사를 만족스럽게 다녀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셋째날 답사를 했던 다산초당에 대해서.....강진의 삼절(三絶)을 꼽으라면 영랑과 고려 청자 그리고 다산 정약용을 꼽습니다. 다산은 한 많은 유배지를 만덕산 자락 초당에 머물며 여러 저서를 서술했고, 차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습니다. 다산 초당은 군외면 귤동마을 만덕산 중턱에 있습니다. 산길 중턱에 자리잡은 이 곳은 고즈넉하며 조용했고 여러저서를 펴내기에 정말 좋은 장소였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다산이 10년간 머물며 후학을 가르치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500여 군에 달하는 책을 저술함으로써 조선 후기 실학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또한 다산 초당에는 다산 사경이라 부르는 정석바위, 약천, 연지, 다조가 있습니다. 정석바위는 초당 뒤편 바위에 다산이 직접 쓰고 새긴 것으로 이곳에서의 생활을 바르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丁石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약천은 다산이 바위틈 수맥을 찾아 만든 샘으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항상 깨끗하고 맑은 약수가 솟아납니다. 다조는 마당 앞에 놓인 평평한 돌로 차를 끓이는 부뚜막 이란 뜻이며 다산은 주위에 자생하는 차잎을 따다가 그늘에 말린후 솔방울을 지펴서 차를 끓였다고 합니다. 연지는 다산초당과 동암 사이에 있는 네모난 연못으로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섬을 만들어 석가산이라 불렀고 대나무 홈통을 이용하여 산 속의 물을 연못으로 떨어지게 만들어 비류폭포라고 불렀습니다.# 정약용의 생애와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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